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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볍씨를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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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댓글 0건 조회 67회 작성일 25-05-1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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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볍씨를 파
마을에서 볍씨를 파종하는 모습. 벚꽃이 지고 찔레꽃이 만발하니, 볍씨를 파종할 때가 왔다. 이번 달에는 마을에서 한 번, 공동체 농사에서 한 번, 총 두 번 볍씨 파종에 힘을 보탰다.마을에서는 매일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먹는데, 여기서 먹는 쌀을 마련하기 위한 파종이다. 볍씨 파종기는 이웃에게 빌린 것으로, 손으로 돌리는 방식이다. 손잡이를 돌리면 벨트가 움직이며 먼저 볍씨가 떨어지고, 이어서 상토(모판 바닥에 까는 흙)가 쏟아진다. 계속 돌리다보니 이웃이 “아이고, 힘들어 죽겄네” 하고 넋두리를 내뱉는다.상토가 너무 적게 덮이자 지나가던 할머니께서 보다 못해 팔을 걷고 손수 상토를 뿌려주신다. “할머니, 허리 아프실 텐데 그만하세요” 해도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모판은 일일이 바닥에 깔고, 어느 정도 깔면 그 위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그렇게 300판 정도를 만들었을까. 모판들을 한데 모아 바람이 들지 않도록 꽁꽁 싸맨다. 이웃이 집에서 오래 쓰지 않았던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며 “따시겠네” 하고 흐뭇해한다.두 번째 파종은 벼농사 공동체와 함께 했다. 올해 심는 것은 자광도, 북흑조, 붉은차나락 토종벼다. 이곳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해 벼를 늦게 심고, 늦게 수확하기로 결정했다. 마을 파종 뒤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이 공동체는 주로 무경운농법을 한다. 일반적인 농사처럼 땅을 갈면 탄소가 많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대신 논에 물을 채우고 우렁이를 풀어 잡초를 없앤다. 또 ‘쌀 강화 시스템’(SRI) 농법을 도입했는데, 이는 한 구멍에 볍씨 1~3알만 심고, 물도 적게 주며, 모가 튼튼히 자라도록 간격을 넉넉히 두는 방식이다. 그래서 일반 모판처럼 빽빽하게 심는 것이 아니라, 구멍마다 볍씨를 나눠 넣는다.이번엔 곡성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려온 자동 볍씨 파종기를 사용했다. 전기로 작동되는 이 기계는 먼저 상토를 깔고, 그 위에 볍씨를 뿌린 뒤 다시 상토로 덮고 물까지 뿌리는 전자동 방식이다. 하지만 초반 조정이 중요하다. 조금만 잘못 맞춰도 상토를 버리고 새로 해야 한다.그런데 아뿔싸, 볍씨의 싹이 너무 많이 나와 기계에 들어가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구멍을 키워봐도 해결이 안 된학생 수는 줄어들고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선생하기’ 어려운 시대라고들 한다. 좋은 선생님을 꿈꾸는 사람도 함께 줄어 간다. 교회 안 사정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어린이부터 청년까지 다음세대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교회 주일학교도 축소되고 있다. 어린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 이상으로 주일학교 교사 구하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수십년째 사랑과 기도로 아이들 곁을 지켜온 선생님들이 있다.아이들 영혼을 품고 말씀과 기도로 신앙의 길을 세워 온 주일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을 섬기는 게 사명이고 큰 기쁨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선생님들과 그들 덕에 ‘하나님 손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제자들의 고백은 여전히 희망이 된다.34년째 아동부 사랑… “내 소명이자 은혜” 임채란 권사가 경기도 성남 동문교회 아동부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말씀 암송을 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 동문교회(장천재 목사) 임채란(64) 권사는 34년째 교회에서 아동부 교사로 섬기고 있다. 과거 서울에 있던 상가교회가 1997년 현재 위치에 있는 교회로 합병·이전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임 권사는 줄곧 아이들의 선생님이었다.아동부 학생들이 커서 중·고등부에 올라가고 청년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들이 자라 또 교회학교 일원이 됐다. A씨(43)도 임 권사가 그 세월을 모두 지켜본 ‘아이’다.“권사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아동부 선생님이에요. 권사님표 떡볶이는 우리교회 주일학교 달란트 시장의 트레이드마크였는데, 제 아들이 아동부에 가서도 그 떡볶이를 좋아했어요. 선생님이 다시 제 아이의 선생님이 되신 거죠.” 경기도 성남 동문교회 임채란 권사 A씨가 아동부 교사를 했던 대학생 시절, 임 권사는 선생님에서 선배가 됐다. A씨는 “그 시절 권사님은 좋은 교사 선배이자 신앙 선배였다”고 고백했다.“대학생이 되니 여러 일로 바빠지고 자연스레 교사 일이 점점 버거웠어요. 세상일과 교회 활동 사이 내적 갈등이 커지고 힘들어졌죠. 고민을 털어놓자 권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손만 먼저 놓지 마. 그거면 돼.’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서 많은 순간 제게 위로와 힘이 됐어요.”긴 세월 한 자리를 지켜 온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지난 14일 국민일보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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