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대 개교 33주년 기념 '서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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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댓글 0건 조회 81회 작성일 25-05-21 11:15본문
한서대 개교 33주년 기념 '서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심포지엄 개최한서대학교 개교 33주년 기념, '서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심포지엄[서산]조선 세종대왕(충녕대군)의 세자 책봉 배경이 된 태종의 서산 방문과, 고려 태조 왕건이 건국 이전 위기를 넘긴 장소가 모두 충남 서산 해미 일대라는 역사적 해석이 제기됐다. 이 같은 내용은 20일 한서대학교 연암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서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제2차 심포지엄에서 김진우 한서대 행정부총장의 주제 발표를 통해 소개됐다. 이날 심포지엄은 한서대 개교 33주년을 기념해 서산장학재단과 공동 개최됐다. 김 부총장은 '해미의 역사문화, 문화골 이야기-해미읍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 발표에서 "서산 해미는 한글 창제의 주역인 세종대왕과 고려 건국의 주인공인 왕건 모두와 깊은 연관이 있는 영험한 '대왕골'"이라며,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재조명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서대학교 개교 33주년 기념, '서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심포지엄그는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을 인용해 "1416년 태종이 충녕대군(후일 세종)을 대동해 서산 부석면 도비산에서 군사훈련 겸 사냥인 '강무(講武)'를 시행했으며, 충녕의 총명함에 감탄한 태종이 이때 세자 교체를 결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듬해인 1417년부터 1421년까지 해미읍성이 축조되고, 충청 서해안 방어를 위한 병마절도사영이 덕산에서 해미로 이전됐다. 또한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전쟁 중 서산 해미면 동암리 일대(당시 몽웅역)에서 위기를 맞았으나, 지역 관리 한 씨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이를 기념해 정해현을 설치했으며, 이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김 부총장은 "이 같은 역사적 기록은 해미가 고려와 조선을 잇는 핵심적인 역사 공간이라는 점을 말해준다"며, "해미의 문화유산과 상징성은 서산 지역 정체성 확립과 문화 콘텐츠 개발에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한서대학교 개교 33주년 기념, '서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심포지엄심포지엄에 이어 지역 문화계의 또 다른 의미 있는 장면이 주목을 받았다. 한국문인인장박물관 이재인 관장이 박물관 소장 인장(印章) 1000여 점을 한서대에 기증하며, 학생 교육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기증증서에는 다양한 민속자료도 포함되어 있어 대학 차원의 보존 및 활용 기대감을 높였다. 이어 서산산림조합 후원으로 한서대 캠퍼스에 에메랄드 그린, 홍가시나무 식수식도 열렸다. 홍가시나무는 매년 붉은 새순이 돋아나는 특성 때문한서대 개교 33주년 기념 '서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심포지엄 개최한서대학교 개교 33주년 기념, '서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심포지엄[서산]조선 세종대왕(충녕대군)의 세자 책봉 배경이 된 태종의 서산 방문과, 고려 태조 왕건이 건국 이전 위기를 넘긴 장소가 모두 충남 서산 해미 일대라는 역사적 해석이 제기됐다. 이 같은 내용은 20일 한서대학교 연암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서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제2차 심포지엄에서 김진우 한서대 행정부총장의 주제 발표를 통해 소개됐다. 이날 심포지엄은 한서대 개교 33주년을 기념해 서산장학재단과 공동 개최됐다. 김 부총장은 '해미의 역사문화, 문화골 이야기-해미읍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 발표에서 "서산 해미는 한글 창제의 주역인 세종대왕과 고려 건국의 주인공인 왕건 모두와 깊은 연관이 있는 영험한 '대왕골'"이라며,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재조명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서대학교 개교 33주년 기념, '서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심포지엄그는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을 인용해 "1416년 태종이 충녕대군(후일 세종)을 대동해 서산 부석면 도비산에서 군사훈련 겸 사냥인 '강무(講武)'를 시행했으며, 충녕의 총명함에 감탄한 태종이 이때 세자 교체를 결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듬해인 1417년부터 1421년까지 해미읍성이 축조되고, 충청 서해안 방어를 위한 병마절도사영이 덕산에서 해미로 이전됐다. 또한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전쟁 중 서산 해미면 동암리 일대(당시 몽웅역)에서 위기를 맞았으나, 지역 관리 한 씨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이를 기념해 정해현을 설치했으며, 이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김 부총장은 "이 같은 역사적 기록은 해미가 고려와 조선을 잇는 핵심적인 역사 공간이라는 점을 말해준다"며, "해미의 문화유산과 상징성은 서산 지역 정체성 확립과 문화 콘텐츠 개발에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한서대학교 개교 33주년 기념, '서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심포지엄심포지엄에 이어 지역 문화계의 또 다른 의미 있는 장면이 주목을 받았다. 한국문인인장박물관 이재인 관장이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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