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경제일보][김길호의 일본아리랑]교토 '제18회 미미쓰카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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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군과 싸우다가 돌아가신 우리 선조들이 코를 전리품으로 베고 와서 묻은 귀무덤(처음에는 코무덤 비총:鼻塚이라고 불리웠으나 그 명칭이 잔혹하다고 해서 이총:耳塚이라고 부르게 됨)입니다. 마침 오늘 이곳에서 위령제가 열리고 있어서 잘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묵념하기로 하겠습니다. 일동 묵념!" 일본어가 하나도 섞이지 않는 한국어로 인솔 선생님이 설명하고 있어서 필자는 놀랐다.
10월 22일 오전 10시 교토 미미쓰카에서 위령제가 열리는데 그 직전에 그 무덤 앞에서 많은 학생들이 인솔자의 말을 듣고 묵념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교토나 오사카에 있는 우리 민족학교 학생들인 줄 알았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설명했던 선생님을 찾아가서 인사를 했다. 학생들은 충북 옥천고등학교 학생들이며, 자신은 김유경이라면서 여행사 대표이고 또 한 사람의 인솔 교사는 최홍덕 선생님이었다. 다시 학생들이 온다면서 인솔 대표는 한성학 교감 선생님이신데 모두 210명이 일본에 수학여행을 왔다고 했다.![]()
필자는 김유경 대표의 말을 듣고 가슴 뭉클했다. 한국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지가 국내에 머물지 않고 외국인 이곳 일본까지 행선지가 파급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끔 오사카 지하철이나 열차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볼 때마다 가슴이 울컥했었다. 약 20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 당시는 개인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모두 단체 여행이기 때문에 지하철이나 열차를 이용하지 않고 단체 관광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젊은 세대들이나 고등학생들의 자유로운 외국 나들이는 한국 경제와 국력이 높아지고 발전했다는 바로미터였다. 필자는 그것을 날마다 더욱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옥천고등학생들은 교토 도시샤대학을 방문하여 옥천군이 고향인 향수 시인 정지용 시비와 그 옆에 있는 윤동주 시비 서시와의 만남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나중에 오는 후진이 있다면서 미미쓰카를 떠나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필자는 대견스럽게 바라보았다.![]()
미미쓰카 위령제를 써야 하는데 많이 탈선했지만, 위령제 참가를 위한 여정에서의 좋은 연쇄 반응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쓰면서도 필자의 마음은 여유롭고 가볍다. 이날 오전 8시 30분에 민단 오사카본부 앞에서 오사카 참석자들은 김명홍 민단 오사카본부단장을 비롯하여 전세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어효진(魚曉眞·여) 오사카한국교육원 원장이 그동안 참가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다른 행사가 있어서 참석 못 했는데 오늘은 참석할 수 있다면서, 귀여운 밀감 두 개와 여러 과자가 들어있는 조그만 비닐봉지를 모두에게 배부해서 버스 안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시부터 시작된 위령제는 가랑비가 그칠락 말락 하면서 조바심을 주었지만 가까스로 우산 없어도 넘길 수 있었다. 꼭 1년 전인 2024년 10월 23일, 제17회 미미쓰카 위령제 때는 폭우가 내린다고 해서 그런대로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위령제가 마칠 때까지 참았던 비가 위령제가 끝나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엄청난 소나기가 갑자기 내렸던 생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비가 조그만 빨리 내렸으면 위령제 현장은 대피 소동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제18회 미미쓰카 위령제'는 연중행사로 한국의 <(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이권재 이사장)> 주최로 열리는데, 안내 팜플렛 표지에는 '미미쓰카 위령제'라고 써 있었지만 표지 안의 제순(祭順) 차례에는 '이비총(耳鼻塚)위령제'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제순은 모두 17항목으로 구성되어서, 1.점촉(点燭)은 왕청일 민단 교토본부 상임고문, 고기사도야부노우치샤츄(古儀茶道藪內社中) 우에하라히로가즈(上原博一) 다도가. 2.헌향과. 3.청수봉존(淸水奉尊)은 이권재 이사장. 4. 헌화는 이경란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독일 함부르크지부 부지부장과 재일한국부인회 교토부지방본부 정연자 회장이 함께 했다.![]()
5.초헌은 김령하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6.독축(讀祝)은 갱정유도(更定儒道) 이학규 총무부장. 7.아헌은 주오사카대한민국총영사 이지훈 직무대리. 8.종헌은 민단오사카본부 김명홍 단장과 민단교토본부 장상일 단장. 9.헌다(獻茶)는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윤도선 교토지부장. 10.염불은 (종)정광본문원(淨光本門院) 자홍해광 주지스님. 11.위령굿(진도씻김굿)은 국악LAB한양팔도 김광윤 대표들의 연주와 춤. 12.내빈소개. 13.이권재 이사장의 인사말씀. 14.이지훈 오사카총영사 직무대리의 추도사. 15.참신배례(묵도)는 참가자 전원. 16. 헌화는 참가자 전원. 17.음복은 일부 임원. 그리고 희망 참가자 기념 촬영을 마치고 약 한 시간 반의 위령제는 끝났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간 관계로 옥천고등학교 학생들이 위령제를 보지 못했지만 약 430여년 전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희생자 약 12만 6000명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외국에서도 이렇게 해마다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고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신(祭神)으로 모시는 도요쿠니(豊國)신사 바로 앞에 있는 미미쓰카에서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와 콘트라스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김명홍 민단오사카본부 단장이 제단 앞의 독축 장면(축문 읽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계속 영상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종헌 담당의 내빈으로 초대 받고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가 비좁은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나와서 계속 촬영하는 모습이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김명홍 단장이 위령제에 임하는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위령제를 마치고 점심 식사 후, 오사카에서 참석한 일행은 문화 탐방으로 교토 고려미술관 견학이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오후에 고별식 참석 때문에 위령제를 마치고 아쉬웠지만 혼자 열차를 타고 바로 오사카로 돌아왔다.
미미쓰카 무덤 안에 있는 벚나무 사진을 소개한 것은 나무줄기가 곧바로 위로 뻗지 못하고 갖은 고난의 세월 속에서 휘어지면서도 늠름하게 가지를 펴고 있다. 그리고 거목으로 성장해서 무덤을 내려다 보는 무덤지키는 고목이 되었다. 미미쓰카의 혼령들과 오버랩되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가슴 뭉클하다.
출처 : 제주경제일보(http://www.jejukyeong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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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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